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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박범신 문학에 대한 평가와 '더러운 책상'

by 삶을 만드는 사과 202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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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범신 문학에 대한 평가의 변화

 

 소설가 박범신은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여름의 잔해가 당선된 이후, 50여 년 가까이 왕성한 문학활동을 이어왔다. 이러한 그의 문학적 역량은 나는 서고에서 낮잠 자는 소설책은 쓰지 않겠다. 대중으로부터 결코 떨어지고 싶지 않다라고 했던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의 소산이다. 그러나 1970년대와 1980년대 왕성한 문학창작 활동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정면으로 관통해 왔고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 초반까지 그의 문학에 대한 논의는 단편적으로 이뤄졌다. 이 현상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것 중의 하나는 대중성에 기인한다. 그 간의 연구자들이 박범신의 문학을 보다 의미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자리에 그의 수많은 신문연재 혹은 대중적 장편소설들은 분명히 하나의 장애와 판단의 유보를 가져온다라는 한 연구자의 견해에 동의하여, 문학성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단편소설까지도 논의의 대상에서 배제한 것이었다.

어쩌면 작가의 입장에서는 대중에게 읽히는 작품을 창작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고 대중이 욕망에 부합하는 소설 형식을 차용할 수 있겠지만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소설 문학이 그렇듯이 사회의 문제에 깊이 전착하여 삶의 한 단면을 담아낼 수 있으면서도 기존의 소설과 다른 기법이나 시각으로 접근하는 소설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시각의 차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박범신의 장편소설에 드러나는 과도한 감각적 문체의 사용과 현실에서 비껴선 낭만성, 그리고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표피적인 결말을 맺는 소설 구조가 연구자의 연구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1993상상력의 불이 꺼졌다, 3년간의 휴식기를 거친 후, 연작소설 흰소가 끄는 수레(1997)을 시작으로 창작한 자전적 소설 더러운 책상(2003),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다룬 나마스테(2005)를 비롯하여 졸라체(2008), 고산자(2009), 은교(2010) 등 갈망 3부작을 발표하면서 문학계의 호평이 이어졌고 1980년 이후 문학상과 인연이 없었던 그가 김동리 문학상’(2001)을 시작으로 여러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그의 문학성을 인정받은 것은 물론 많은 연구자들이 그의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같은 현상은 박범신 문학이 지닌 문학성과 아울러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 그리고 학계에서 도외시해 왔던 대중 서사에 대한 연구자들의 인식의 변화, 즉 순수문학과 대중 문학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문학의 자장 안에서 연구의 가치가 있다는 연구 인식의 변화와도 깊은 관련을 맺는다. 대체적으로 연구자들의 연구논문이 2010년을 전후하여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다시 말해 일차 휴식기 이후, 박범신 작가의 문학적 변화가 1970년대 1980년대 그의 문학에 대한 재평가의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대략적으로 네 방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다뤘던 나마스테에 대한 논의,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감히 탐험하고 기록했다.”라고 한 작가의 말에 동의하듯이 욕망에 맞춰 정신분석학적 방법을 사용한 연구 및 영화 은교와의 비교를 통한 소설 은교에 대한 논의, 박범신 초기 소설2000년대 이후 소설과의 관련성, 그리고 그에 따른 박범신 문학론이 그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박범신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문학적 특성을 총체적으로 밝혀낸 학술적 연구는 물론 대중성에 대한 일방적 매도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문학의 대중성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고 한 논자의 주장도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할 것이다.

 

2. 자전적 소설 더러운 책상에 숨어 있는 작가의 삶

 박범신의 자전적 소설 더러운 책상(2003)은 자전적 소설이 그러하듯이 자전적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작가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삶에 대한 성찰과 아울러 미래를 선취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박범신의 자전적 소설 더러운 책상은 그가 문학 창작시기를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닌 독서를 통해 문학적 소양을 쌓고 그의 자의식을 형성하는 것은 물론 강고히 하는 청소년기를 배경으로 한다. 다시 말해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 열여섯의 고등학생 때부터 스무 살까지 대략 5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공간적 배경으로는 충청남도 강경과 전라북도 이리(현 익산)를 주무대로 하며, 열아홉 살 이후에는 전주와 여수, 그리고 부산, 서울 등을 소설 공간으로 설정했다.

 자전적 소설 더러운 책상에 대해 작가 후기에서 박범신은 예인이라고 불리고 싶은 내게 아주 특별한소설이라고 말한다. 이 때의 예인(藝人)을 축자적으로 해석하면 예술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또한 이 소설이 특별하다는 것은 자신의 예술성을 작가가 심여를 기울려 녹여냈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첫 휴식기인 3년 간의 절필 과정에서 작가로서 쌓았던 상업적 기득권을 반납했다고 술회한다. 이것은 그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독자의 은밀한 욕망을 대리 충족시킬 수 있는 그간의 대중소설과는 다른 소설을 창작하겠다는 선언이, 소설 더러운 책상은 예인으로서의 출발을 알리는 자전적 소설인 셈이다. 실제 이 소설은 연작소설 흰소가 끄는 수레에서 보였던 다양한 실험과 광기의 세계 혹은 작가로서의 실존적 자아 탐색을 전면적으로 수행하여 분열된 자아를 통해 과거를 삶과 현재의 삶을 성찰하고 광기의 세계에 대응할 수 있는 문학적 역량을 한껏 발휘한 작품이다. 또한 기존의 자전적 소설의 문법과는 달리 분열된 자아를 전경화시킴으로써 입체적 서사를 구축했고 현재형 시제를 사용함으로써 영상예술에 맞대응할 수 있는 생동감은 물론 지난 과거가 단순한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화된 과거이므로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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