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 『더러운 책상』에 담긴 존재론적 불안
소설 『더러운 책상』의 등장인물 ‘그’의 의식의 연원을 살펴보면, 존재론적 불안에서 시작되었다. 존재론적 불안의식은 작가 박범신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급했던 소재로 그가 태어날 때의 사건이다. 이 소설에서도 ‘그’의 존재론적 불안 의식을 심화시키고 있음을 계속 언급함으로써 그의 내면에 트라우마로 자리잡은 사건이었던 것이다. 태어날 때, 그가 남아가 아니었다면 죽을 수 있는 상황에 놓였는데, 그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존재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자신을 낳은 어머니였다. 다시 말해 그가 남아였기 망정이지 여아였으면 엄마에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현실에서 ‘그’가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것은 사랑하는 엄마로부터 죽임을 당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이 사건은 무의식적으로 존재론적인 환멸로 다가온다. 이 존재론적 환멸은 인식론적으로 확대해 가는데, 그 인식론적 실존으로 그를 이끌었던 것은 독서, 특히 문학이었다. 갓난 아이를 발견하는 순간, 일본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신문지」를 떠올린다는지, 이리공고 학생에게 폭력을 당할 때, 가방 속에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 들어 있고 읽고 있었던 책은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였으며, 그 학생을 응징할 때는 장 주네의 문학을 떠올리는 등 사건이 진행될 때 마다 떠올리는 것은 문학이었다. 특히 그가 영향을 받은 문학가는 장 주네의 문학이었다. 장 주네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 버림받은 작가로 “그 역시 세상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이후 그의 반항과 거부는 존재론적 특성”이 되버렸다는 사르트르의 평가에서 보듯이 태어날 때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실존’에 대한 물음으로 그를 이끌었으며, 그가 찾은 것은 장 주네를 비롯한 여러 문학을 통해 실존적 불안을 극복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자의식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인 열여섯에 자신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프론티어’ 이면서 ‘아름다운 청년’인 ‘케네디의 암살’ 사건으로 그는 세계가 ‘광기’로 휩쓸릴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또한 케네디의 아내인 ‘재클린’의 이름을 몇몇의 여성들에게 호명하는 데 쓰는 것은 광기의 세상에서 죽은 ‘케네디’의 대체자로서 자신을 상정한 것으로, 스스로가 ‘광기의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청년’이라고 자임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듭되는 갓 태어난 버린 아이에 대한 엄마와 파출소, 그리고 고아원의 안이한 대응으로 결국 그 아이를 죽음에 몰아넣었다는 인식, 그리고 벌어진 알 수 없는 폭력의 대상이 된 자신과 그 폭력에 대응하는 자신을 보며, 이 세계는 치유할 수 없는 ‘광기’의 세계로 인식하고, 스스로 자살을 시도했던 것이다.
자살 시도의 실패한 후, 그가 기획한 ‘위악’적 언행은 친구들을 온갖 사회 윤리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그’가 현실이 ‘광기’의 세계임을 그들에게 인식시키고 그 세계를 바꾸고자 하는 소박한 의도가 담겨있었지만 담임 선생의 가혹한 체벌로 인해 그의 소박한 의도는 산산히 부서지고 모범생이었던 친구들은 다시 ‘광기’의 세계로 편입되어 버린다. 그도 담임에게 잘못된 행위에 대해 용서를 구함으로써, 그리고 K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비관적 세계인식은 의식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전주교육대학에서 만난 ‘블루’의 영향아래 ‘그’는 “세계의 톱니바퀴에 은근슬쩍 편입”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현실과 타협을 모색했던 ‘그’에게 그녀가 다른 남자와 바람피움으로써 의식의 수면 아래에 가라앉았던 비관적 세계인식, 즉 현실이 ‘광기’의 세계임을 강하게 인식케 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여수를 거쳐 부산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겪은 온갖 경험들은 그가 부딪힌 현실과 세계가 ‘광기’로 휩싸여 있음을 거듭 인식하는 장으로 작동한다. 여수에서의 외팔이의 애욕에 의한 아내 살해의 ‘광기’, 노트에 적혀 있는 임화의 시 한 구절로 인해 부산에서 경찰에 잡혀 심한 고문을 받게 되면서 직감적으로 느낀 이데올로기에 의한 ‘광기’ 등을 인식하며, 그는 고향 강경으로 돌아와 자신을 살해하고 만다. ‘그’의 자살은 이 세계를 ‘광기’로 휩싸여 있다고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나름의 저항을 하였지만 무위로 끝남으로써 오는 허무의 행동이었으며, ‘그’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광기’의 세계에 대한 저항이었고 스스로가 영원히 박제된 ‘아름다운 청년’임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가치판단에는 문학이 존재했고 문학을 통해 세계를 인식했으며, 문학을 통해 형성된 의식은 낭만적이었고 이상적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의 분열된 또 다른 ‘나’는 ‘그’가 전주역에서 여수 방향의 하행선을 타고 떠날 때, 서울 방향의 상행선을 타고 서울로 향한다. ‘나’가 서울로 향한다는 것은 ‘그’와는 다르게 현실과의 타협을 염두해 둔 행동으로 보이는데, ‘나’는 큰 누나 댁에 기거하면서 서울 주변 하층민들의 생활을 겪으며,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탐색한다. 이 탐색은 ‘그’가 추구했던 실존과는 거리가 있는 ‘광기’의 세계와 타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로써 ‘나’는 작가로서의 삶을 쉰 일곱의 나이에까지 이어왔는데, ‘그’가 살았으면 격멸할지도 모르는 나이까지 살아 있다고 술회하는 것이다.
그 길은 어머니에게로 가는 길,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죽은, 고아원 앞 풀섶에 버려졌던 갓난쟁이 재클린… 에게 가는 길, 멀고 드넓은 세계의 자유를 행해 내달리듯 고아원 마당을 달려나오던 여학교 교복 차림의 소녀 재클린…에게, 또는 부산역 후민지 뒷길이나 서울역 앞의 화류항에 추위로 떨면서 서설이고 있는 창녀 재클린에게 가는 길. 그리고 오래전 호남선 철로를 베고 누운 스무살의 피 흘리는, 그에게 가는 … 초월적 길이다. 별빛이 쏟아지던 호남선 철로, 침목과 자갈 사이로 실뱀처럼 흘러들던 그의 젊은 피를 생각하면 쉰일곱이라니, 너무나 오래 살았다고 느낀다. 나의 배신은 그러므로 그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더러운 책상』, 338쪽)
쉰일곱의 ‘나’는 과거 만났던 여성들을 ‘재클린’으로 부르면서도 ‘그’에 대한 ‘나의 배신’을 인정하고 있지만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그 여성들을 ‘재클린’으로 인식하고 현재 만나는 ‘서른아홉 살’ 여성을 ‘재클린’으로 호명하며, 문학 읽기를 함께 한다는 점에서 ‘그’와 분리된 ‘나’는 현실과 타협하였지만 ‘그’가 지녔던 ‘아름다운 청년’의 이상 품고 현실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존재가 될 것임을 표현한 것이다.
이상 살펴 볼 때, 등장인물 ‘그’를 비롯한 ‘나’는 현실을 인식하는 토대를 문학에 둔다는 측면에서 김승옥의 『환상수첩』의 ‘정우’와 닮아 있으나, 김승옥의 ‘정우’는 문학의 토대에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성찰로 죽음을 선택했다면, 박범신의 ‘그’는 문학적 토대에 의해 형성된 의식에서 현실을 바라봄으로써 현실은 ‘광기’의 세상으로 그 광기의 세상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자살을 함으로써 자신의 순수이상을 지키려한 것이다. 그러나 박범신의 분신일 수 있는 작가 ‘나’는 ‘광기’의 세상이 강고한 세워진 현실임을 인식하고 문학으로 구현된 의식을 수정하여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그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나름의 행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2. 소설 『더러운 책상』 나타난 박범신 문학적 특성
자전적 소설 『더러운 책상』에 대해 ‘작가 후기’에서 박범신은 “예인이라고 불리고 싶은 내게 아주 특별한” 소설이라고 말한다. 이때의 예인(藝人)을 축자적으로 해석하면 ‘예술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또한 이 소설이 ‘특별하다’는 것은 자신의 예술성을 작가가 심여를 기울여 녹여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작가의 의식과 언어와의 싸움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작가가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하여 비평”하고자 하는 것이라기보다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을 찾고자 한다.
또한 그는 첫 휴식기인 3년 간의 절필 과정에서 작가로서 쌓았던 “상업적 기득권을 반납”했다고 술회한다. 이것은 “그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독자의 은밀한 욕망을 대리 충족” 시킬 수 있는 그간의 대중소설과는 다른 소설을 창작하겠다는 선언이고, 소설 『더러운 책상』은 예인으로서의 출발을 알리는 자전적 소설인 셈이다. 실제 이 소설은 연작소설 『흰소가 끄는 수레』에서 보였던 다양한 실험과 광기의 세계 혹은 작가로서의 실존적 자아 탐색을 전면적으로 수행하여 분열된 자아를 통해 과거를 삶과 현재의 삶을 성찰하고 ‘광기’의 세계에 대응할 수 있는 문학적 역량을 한껏 발휘한 작품이다. 또한 기존의 자전적 소설의 문법과는 달리 분열된 자아를 전경화시킴으로써 입체적 서사를 구축했고 현재형 시제를 사용함으로써 영상예술에 맞대응할 수 있는 생동감은 물론 지난 과거가 단순한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화된 과거이므로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소설 『더러운 책상』은 박범신 소설이 지녔던 대중성으로의 경도를 예술성으로 끌어올려 대중성과 예술성의 경계선에 위치시키려는 솔직한 고백이며 앞으로 그의 문학적 성과와 방향을 예감할 수 있게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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