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 ‘더러운 책상’의 제목의 상징성
소설 『더러운 책상』의 제목이 지닌 상징성을 알아야만 열여섯에서 스무 살 동안 ‘그’가 현실에서 인식했던 ‘환멸’들을 추적하는 동시에 그 실체를 구체적으로 적시할 수 있다. 먼저 등장인물 ‘그’와 ‘나’가 제시한 ‘더러운 책상’은 소설에서 총 네 번 기술되는데, 두 번은 ‘그’에 의해서, 두 번은 ‘나’에 의한 것이다. ‘나’에 의해 제시된 두 번의 ‘더러운 책상’은 “그는 오래 전에 이미 죽었고, 더러운 책상…이라는 제목”이라고 하는 진술에서 볼 수 있는 데, 그것이 “그의 격렬했던 죽음에 대한 보고서”와 같음으로 소설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술했던 ‘더러운 책상’에는 그 상징성이 놓여있다.
(가) 그러니 가서 공부해라. 수업 시작 종 친다야. 가보라구들. 난 혼자 남겨지는 게 좋아. 너희들은 가서 무리에 섞여, 똥자루가 더 빨리 길게 나오는지, 나중 성적표에 다가 기록되겠지, 나는 다 알고 있어 수십 년 후에 너희들이 어떻게 살지 훤히 뵌다구, 가봐 .가서, 더러운 책상을 갈고 닦아. 미친 세상으로 미쳐서 나갈 준비를 하는 거야. 더러운 단백질의 똥자루로 칠갑을 해 보란 말이야. 너희, 더러운, 미친 책상들.(245쪽)
(나) 남자는 여자를 원하고 여자는 남자를 원한다. 그렇지만 단백질의 시체들을 날로날로 키워나가야 하도록 훈육되고 있는, 그들은 더러운 책상을 떠나지 못하는 모범학생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진실로 원하는 것을 정직하게 말했다가는 돌팔매가 날아올게 확실하다.(137쪽)
윗 글 (가)와 (나)는 ‘그’의 내면의 서술이다. (가)에서 ‘머리칼’은 ‘죽은 단백질’에 불과하며, ‘죽은 단백질’은 ‘선생님의 말씀’, ‘교과서’로, 그리고 결국은 “세계의 광기에 편입되기 위해, 말로 사기치면서, 길게 길게 길러야”하는 “그래야 출세”하는 ‘똥자루’로 환유하는데, ‘더러운 책상’은 ‘똥자루’를 기르기 위해 ‘갈고 닦는’ 행위가 연속으로 이뤄지는 공간이다. (나)는 ‘그’가 학교 친구들과 주변의 이리여고의 여학생들과 함께 그룹 ‘나르시스’를 문학과 학습을 병행하는 모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그 모임에 함께 하는 모범생인 친구들을 타락으로 유도함으로써 그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을 우회적으로 알려주고자 한다. 이때의 ‘더러운 책상’은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억제하는 공간인 셈이다. 따라서 ‘그’가 인식하는 ‘더러운 책상’은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억제하며, ‘미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미친 세상’을 확고하게 만드는 구축물의 역할까지 병행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완벽하게 자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알’의 세계인 것이다.
2. 광기에 대한 광기로의 맞섬
그렇다면 이 같은 ‘그’의 인식은 어떠한 현실에서 도출된 것이며, 그에 대해 ‘그’는 어떤 인식의 과정을 통해 의식화했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열여섯의 ‘그’에서부터 스무 살의 ‘그’에게 놓여진 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열여섯의 ‘그’에게 놓여진 현실은 ‘그’의 ‘책꽂이 장살’에 붙어 있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케네디는 그가 가장 존경하고 닮고자 하는 우상으로, ‘뉴 프런티어’이면서, ‘아름다운 청년’이다. 그런 ‘그’의 우상인 케네디가 ‘암살’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그가 보기에 “하나의 거대한, 미친 그물망이 우주로부터 내려와 지구를 절망적으로 가둬버리는 삽화”를 떠올릴 만큼 그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세계가 “미쳤어 … 모두 미칠” 것이라는 것을 “야생 동물 같은 예감”을 한다. 또한 갓 태어난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 주변의 공장에 다니는 처녀와 그 아이를 키우자는 그의 의견에도 파출소로 보냈고, 파출소는 다시 고아원으로 보내져 결국 태어난 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아이를 죽게 만든 비정한 현실, 이리공고 학생이 그에게 저지른 ‘이유없는 폭력’ 등은 사회가 ‘광기’로 휩싸여 있음을 확신케 한다. 이와 같이 세상의 ‘광기’가 ‘그’의 내부에 ‘광기’를 만들면서 이유없는 폭력을 저지른 이리공고 학생을 찾아가 폭력으로 응징한다. 즉 현실의 문제들이 ‘그’의 영혼에 큰 내적 상처를 남김으로써, 세상의 ‘광기’가 내부적 ‘광기’를 만드는데, ‘그’에게 외부적으로는 ‘살해의 욕망’과 함께 스스로를 ‘살해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전이하여 자살을 감행한다.
열일곱 살에 ‘그’는 광기의 세계에 저항하고자 한다. 자신에 대한 살해 욕망과 타자에 대한 살해 욕망이 철인동 창녀촌의 경험과 모범생인 ‘그’의 친구들을 타락시키고자 하는 욕망으로 전이된다. 하지만 철인동 창녀촌에서 만난 ‘참나리’라는 여인을 비롯하여 몸파는 여인들은 나름의 삶의 이유들이 있다. 또한 ‘그’가 모범생 친구들에게 보인 언행들은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에게 자신들의 욕망을 찾아주려던 것이었지만 사회적 측면으로 볼 때, 학생으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용서 받을 수 없는 행위의 결과는 친구들의 성적으로 증명되어 나타났다. 그들의 성적은 ‘그’와 함께 하면 할수록 하향 곡선을 그렸으며, ‘그’는 그들의 타락을 지켜보면서 득의양양했던 반면, 윤리적 측면에 서 있는 담임교사는 그들에게 가혹한 체벌을 행사했다. 그 결과, 친구들은 자신들만의 길로 뿔뿔이 흩어지고, 그 또한 ‘자기 살해의 황홀한 비탄과 결별’하게 된다. 열여덟 살, ‘그’의 현실에는 친구 K의 죽음이 있다. 폐결핵을 앓고 있던 K는 가난한 집안의 사정으로 아버지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원하지만 그는 대학 가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가난한 현실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다는 불안감과 절망에 그는 자살을 선택한다. K의 자살에 대해 그는 “세계의 광기와 맞설, 유일한, 자기 살해의, 황홀한, 비탄이 벌어진 관 틈으로 흙과 함께 들어가 묻”혔다고 인식한다. ‘그’가 가려던 길을 K가 먼저 감으로써 ‘그’의 자살은 유보된다.
열아홉과 스무 살, ‘그’는 전주교육대학에서부터 시작한다. 전주교육대학에서의 생활은 ‘자기 살해의 실패’와 함께 아버지를 살해하지 못해 고향을 떠나고자 선택한 것이다. 전주에서의 3개월의 생활은 ‘블루’라고 명명한 한 여학생과의 사랑으로 ‘그’는 “혼자 머물러 있지만 더 이상 어제의 그가 아니고, 또 그는 오래 머물러 있지만 새로운 탄생의 예감으로 불멸을 향해 흐르는 중”이라고 생각하면서 삶의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의 배신 행위는 또다시 ‘광기의 세계’로부터 자기 살해 욕망을 불러온다. 이로 인해 ‘그’는 남행을 선택하여 여수를 거쳐 부산에 이르기까지 온갖 경험을 통해 자살의 당위성을 찾았고 고향 강경으로 돌아와 자살을 감행한다.
이와 같이 놓여진 현실에 대해 ‘그’가 ‘광기의 세계’로 인식케 하는 요인들은 무엇인가? 쉰 여섯의 ‘나’가 보여준 60년대의 시대적 현실이 ‘그’의 인식을 만들었는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쉰 여섯의 ‘나’에 의해 구축된 당시의 시대의 사회적 사건과의 관계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본질적으로 세계가 보다 광포한 광기에 휩싸일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60년대의 그도 놀라운 직관으로 짚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큰 꿈은 이를 테면 굵은 똥과 같고, 굵은 똥은 광기와 욕망의 확대재생산 라인 안에서 놀 수 있다. <중략> 그는 세계의 광기에 대해 직관적으로 이해하지만, 훗날, 베트남 전쟁에서 얼마나 죽고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며, 사라진 사회주의 제국들과, 폭발하는 인터넷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병사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멀고 먼 관타나모까지, 19세기 노예처럼 족쇄가 채워지고 두건이 씌워진 채 호송되고 있다는 사실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203-204쪽)
등장인물 ‘그’는 케네디의 암살에 대한 소식을 라디오에서 듣는 순간부터 ‘섬광’처럼 그 무엇이 들어옴으로써 그게 무엇인지 인식케 된다. 이 케네디의 암살 사건을 제외하고는 윗글에서 보듯이 실제 틈틈이 보여준 60년대의 사회적 사건들에서 그의 인식이 작동되지는 않는다. 다만 ‘섬광’처럼 다가온 ‘직관’을 통해서 세계가 ‘광기’에 휩싸여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직관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순수한 감수성을 지녔던 ‘그’가 독서, 특히 문학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열여섯 살의 그가 ‘세계를 더 잘 알고 있다’는 단언과 함께 현실을 ‘광기의 세상’으로 인식한 것은 낭만적이면서도 이상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당대의 현실의 문제에 비판적 의식을 키워주었던 잡지 《사상계》는 한낱 화장실의 휴지로밖에 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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