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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소설 '광장'에 엿보이는 진정한 과장

by 삶을 만드는 사과 2023.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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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19혁명과 소설 광장

 

광장의 서문에서 구정권 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고 최인훈이 밝혔듯이 이 소설은 19604.19가 없었다면 태어날 수 없는 작품이었다. 물론 이 소설은 6.25전쟁의 전후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1950년대 문학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는다. 하지만 자유평등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측면에서 전후소설을 넘어서는 발판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치 상황에서 이를 객관화하여 다룬 것은 4.19 이전에는 불가했다. 그 당시는 동족상잔이 남긴 상처가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은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지니고 있었다. 이를 자유당과 이승만 정권은 이를 권력 유지에 이용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시 말해 당시의 한국사회는 레드컴플렉스에 휩싸여있었고 이승만 정권은 이를 그들의 권력에 반하는 세력의 축출도구로 이용하여 권력을 지속하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또한 이명준의 남한에 대한 비판적 견해, 그리고 남도 북도 아닌 제 3국을 선택했다는 상황도 다룰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과 체제나 사상의 우열을 다투었던 이승만 정권에게 당시 현실에 부합한 이명준의 남한 비판과 제 3국 선택은 국민들을 각성시키는 계기는 물론 지배권력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광장에 관한 수많은 연구가 이뤄졌기 때문에 관점을 달리하여 이명준이 비판적으로 바라본 남북의 현실과 제 3국을 선택한 배경만을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4월 혁명이 광장에 끼친 영향, 그리고 혁명이후 만들어갔어야 할 사회의 모습을 광장을 통해 엿 볼 수 있을 것이다. 남과 북에 대한 신랄한 이명준의 비판은 남한에서는 정 선생과의 대화에서, 그리고 북한에서는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이뤄진다. 철학과 출신으로서 400 여 권의 독서와 남북 체제를 직접 체험한 이명준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왜냐하면 독서량은 이명준의 인식을 관념화함으로써 객관 현실에 의한 그것의 정합성 여부에 대한 검증의 기회는 스스로 봉쇄되는 측면을 지니기 때문이다. 먼저 정 선생과 대화에서 이명준은 남한의 정치, 경제, 문화에 관해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남한의 정치의 광장은 미군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받아서이뤄지며 정치가들은 정치의 광장에 나와 도둑질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한마디로 정치의 광장은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이다. 이 부조리에 대해 시민들이 나설라치면 정치 깡패를 이용하여 보복을 한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밀실에 스스로 유폐된다. 경제의 광장도 마찬가지다. “도둑질한 물건이 넘치며, ‘사기협박’, 그리고 허영이 난무하는 공간으로 자본주의의 교활한 윤리조차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의 공간은 아편꽃 기르기가 한창인 공간으로 정치와 경제에서의 부정한 돈이 마구 뿌려지는 곳이다. 시인들은 사디즘 충동을 카타르시스하는데, 가난하여 경험이 없이 관념으로 시를 쓰기 때문이다. 이 같이 그가 보기에 남한의 사회는 개인만 있고 국민이 없는”“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이 없는 사회이다. 이명준의 부연 설명에 의하면 남한에는 서양에서 민주주의를 배웠다는 지식인들은 잘난 척 하고 일본놈들 밑에서 애국자를 잡아죽였던 놈들은 고위 간부가 되었는데, 이 두 계층은 자신들의 비루한 욕망을 위해 인민들의 위해서 군림한다. 여기에 사회의 미래인 청년들은 섹스와 재즈와 그림 속의 미국 여배우의 젓가슴에서 허덕이고 있다. 한마디로 비루한 욕망과 탈을 쓴 권세욕과, 그리고 섹스만이 난무하는 공간인 셈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스스로 밀실에 유폐된 시민들이 준비가 되면 텅빈 광장에서 폭군과 대결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한다. 이 판단은 북한의 있는 아버지로 인해 경찰의 취조를 받으면서, 몸소 체험한다. 그 경찰의 폭력은 물론이고 그들이 일제 때 특고 형사였다. 해방이 되었지만 남한은 강점기와 전혀 변한 것이 없다는 비관주의적 역사관이 그에게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느낀 북한은 어떠한가? ‘인민의 공화국을 내세웠지만 자기 정권을 세운 기쁨으로 넘치는 웃음을 얼굴에 지닌 그런 인민은 어디에도 없다. 개인의 욕망은 박탈당하고 오로지 이 생각하고 판단해주고 당이 말한 것을 단지 복창만만 하면 되는 공간이다. 인민은 불쌍한 양떼로 전락시킨 것은 인민의 혁명을 외쳤던 아버지와 같은 소수의 권력자들이다. 그들은 인민을 희생시켜 남한의 부르조아와 유사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남북한 어느 곳에도 보람있게 청춘을 불태우고 싶거나 삶다운 삶을 살수 있는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광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제 3국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으로 볼 때, 이명준에게 남북한의 경험과 인식,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비관주의적인 역사 및 사회인식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 이면에 끊임없이 추동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광장의 모습이다.

 

2. 혁명이후의 진정한 광장

 

소설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어휘인 광장에 있다. 이 소설에서 광장이란 어휘는 대립되기도 하고 다층적이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의미로 산재해 있다. 우선 모든 광장의 토대인 남한과 북한의 정치 광장은 이념적으로는 대립적이지만 매우 친근성을 띤다. 남한의 정치 광장은 다수를 위한 공간이지만 개인의 탐욕이 우선하는 밀실로 통하는 공간으로 작동한다. 북한의 정치 광장은 기계적 평등의 공간이지만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소수의 밀실이 존재한다. 그곳은 명준의 아버지 같은 당지도자만 누리는 곳으로 체제 유지를 위해 숨겨져 있다. 남한과 북한의 선량한 시민들은 행위는 욕망의 발현 여부에 따라 다르겠지만 언제나 체제 유지의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모든 광장의 토대인 정치의 광장의 문제는 다양한 광장을 망가트린다. 그럼으로 북한에서 만난 아버지에게 남북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그런데 이명준이 남한에서 만난 윤선생과의 대화나 북한에서 아버지에게 격정적으로 토로한 남북한의 비판, 그리고 그의 죽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필요한 광장을 상정할 수 있도록 한다.

삶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광장의 첫 조건은 가족이다. 밀실에 갇힌 가족이 아닌 서로가 소통하며 광장과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명준이 남한에서 윤애가 자신과 소통할 수 있었더라면 그는 남한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죽음은 갈매기로 상징화된 윤혜와 딸과 함께 할 수 있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둘째 조건은 남한에서 윤애, 태식 등과 북한에서의 기자 동료들, 타고르호에서의 동료들과 함께 지녀야할 믿음이 기반되어야 한다. 더불어 소수의 권력자나 특권을 지닌 존재들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공평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열정을 불태우며, 개인이 자발적으로 희생할 수 있는 공동체가 세 번째 조건이다. 이를 다시 말하면 이명준이 꿈꾸었던 광장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면서도 평등한 공간이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정의로운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광장은 이 세계에서는 실현 불가능했던 것이다. 즉 단지 이상으로만 인식된다는 점에서 최인훈이 나라의 현실과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등장인물 이명준의 행동이 이를 대변한다. 그는 남한의 현실을 외면한 채 북한으로 도피를 하고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끼며, 전쟁 후, 3국으로 도피를 감행한다. 각 체제를 비판할 수 있는 지식인으로서의 식견도 지니고 있으나 그것을 바탕으로 변혁에 매진하거나 동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3국과 죽음을 선택한 것은 그의 자유의지였지만 기실은 실존적 존재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다. 그렇다면 이명준이 꿈 꾼 이상적인 사회 혹은 나라는 요원한 것인가?

현실의 역사에서는 최인훈이 바라본 비극적인 미래에서 약간은 벗어나 있다. 하지만 자유평등이 완벽하게 구현된 나라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이기는 하지만 이기적인 자본주의 안에서는 요원한 미래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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