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5일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해서 윤석열 대통령은 "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 때문에 수험생과 학부모, 그리고 청치권 등에서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급기야는 교육부에서 150일도 남지 않은 수능에 대해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은 문제" 출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 발언을 살펴보면, 표면적으로 볼 때, 지극히 타당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각계각층, 특히 여당을 중심으로 한 정부와 수험생, 학부모 등에서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다투고 있는가? 무엇이 문제이기에 이 발언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는가?
1. 대통령 발언에 담긴 문제점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능)에 관련한 윤대통령의 발언을 한마디로 말하면 교육에 대해, 특히 수능에 대해 모르고 한 말이다. 그의 발언은 지극히 타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직접 당사자인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고려하지 않는 즉흥적 발언이다. 이제 150일도 남지 않은 기간에 한 국가를 운영하라고 국민이 권리를 부했던 관리자가 한 발언은 그 동안 노력해 온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수능이 쉬워질 것이라는 불안을 야기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수능은 어느 시험보다 학생의 미래를 많은 부분 차지한다. 다시 말해 대학에 입학함으로써 수험생의 미래의 직업은 물론 그에 따른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능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일정 기간을 두고 교육전문가들과 숙의를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일선 교육자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과거 교과서라고 하면 '국정 교과서'로 각 과목이 교육부에 의해 만들어진 한 종류의 교과서였다. 예를 들어 '국어'과목이라고 하면 과거에는 한 교과서를 교육부가 만들어 전국의 학교에 배포하고 공통으로 배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학생들의 다양한 사고력을 키워주기 위해 '국어' 과목에도 많은 종류의 국어 교과서가 출판되고 이것을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공교육에서 다룬 내용'을 출제하라고 하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물론 우리나라는 EBS라는 교육방송에서 만든 교재를 사용하면서 그 곳에서 50%가 출제된다. 사실 이것도 엄밀히 따져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 지난 2년까지 학교에서는 배워왔는데, 고 3에 들어와서 국가가 만든 교육방송의 교재를 봐야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 동안 배운 교과서가 무용지물이 되는 현상이 야기된다. 이때문인지 같은 공부임에도 불구하고 내신과 수능이 따로따로라고 생각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상당히 많다. 다양성을 키워주기 위해 각기 다른 교과서를 사용하는 것은 좋으나 공통 시험을 보기 위한 장치로 EBS 교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교육당국의 고육지책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교재와 연계율을 70%에서 50%로 낮추어 '학생들의 응용능력'을 키워주고자 했던 교육당국의 취지를 윤대통령의 발언으로 인해 무화된 것이다.
성인의 첫 발을 내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온 학생들과 옆에서 묵묵히 그들이 지켜 봐 준 학부모들의 당황과 두려움도 커졌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수능은 학생들의 지금까지 해 온 공부의 종합적인 측정이기도 하지만 더 큰 목표는 학생들의 공부의 수준을 변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어려우면 '불수능' 쉬운면 '물수능'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능을 통해 이뤄진 변별력은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와 학문을 선택해도록 도와준다. 수능 시험이 어려워지든 쉬워지든 간에 사회문제를 야기했지만 출제 문제의 난이도로 발생한 문제였다.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을 경우, 오롯이 그 파장은 열심히 시험을 준비해 온 학생들이 짊어졌던 것이 과거의 일이다. 그런데 150일 정도 남은 수능에 대한 대통령의 측흥적 발언은 수능에서 실수를 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작용하는 동시에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한 배신까지 맛볼 수 있기 때문에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이다.
2. '백년대계'라는 우리 교육당국의 문제
누구나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알고 있다. 즉 시대에 맞게 변화는 있겠지만 교육에 대한 방향은 일관성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이 사회가 좋은 인재들과 좋은 인성을 갖춘 시민들에 의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국가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이 대통령의 한 마디에 좌지우지되고 일관된 방향으로 나아갈 교육부도 대통령의 발언에 부화뇌동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이 실로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과거, 우리는 교육에 대해 시행착오를 겪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만큼 교육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에도 시차를 두면서 정책을 변경해 왔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발언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특히 백년대계인 교육에서 한 사람의 발언에 의해 그 주무부처까지 흔들리는 것은 국민이 준 권리를 남용하는 것이며, 무소불위의 대통령을 만드는 것이다. 잘못되면 과거 집안에서는 아이에게 회초리를 들었고 국가 차원에서는 많은 지식인이 왕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바로 교육 정책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권력에 굴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가는 교육정책이 필요하다.